|
마라도에는 그 상징성 때문에 3대 종단의 신전이 다 들어서 있다. 불교의 사찰과 천주교 성당, 개신교 교회. 사람들은 이들 종교시설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짜장면 먹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정작 오랜 세월 마라도를 지켜온 토착 신의 신전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토착신의 신전은 번듯한 건물 하나 없기 때문이다. 가끔 무속인들이 "신빨"을 받으러 기도나 하고 갈뿐이다. 이 신전은 마라도 들머리 오른쪽 해변에 있는 ‘애기업개당’이다.
![]()
제주는 신들의 왕국이다. 무려 1만8천의 신들이 거처한다. 마을마다 마을신들이 따로 있다. 마라도의 신은 애기업개다. 마라도에 오거든 잊지 말고 ‘애기업개당’을 찾아가 참배하시라. 거기 섬의 신화와 역사가 다 들어 있다. 애기업개는 오랜 세월 섬의 수호신이었다. 살아서 처참했으나 죽어서 신이 된 여자 아이. 옛날 마라도에 사람이 살지 않던 시절, 모슬포 사는 이씨 여인이 버려진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여인은 관에 신고했으나 부모를 찾지 못했고 아이는 여인에게 맡겨졌다. 아이가 없던 여인은 딸처럼 길렀다. 아이가 여덟 살 되던 해 여인은 아이를 낳았다. 친자식이 생기자 양딸은 아이 업어 키워주는 애기업개가 되었다. 애기업개는 구성진 소리를 잘도 했다. 갓난아이가 울 때면 애기업개는 아이를 업고 어르며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아가 아가 우지마라. 아방 있고 어멍 있는 아가 너 왜 우느냐." 애기업개는 울음을 삼키며 아이를 달랬다. 그 무렵 마라도는 위험하여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는 금(禁)섬이었다. 섬 주변에 해산물이 넘쳐나도 물살이 거세 좀처럼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매년 봄 망종 때부터 보름간은 물살이 죽어 입도(入島)가 허가되었다. 어느 봄 망종 때 모슬포의 '잠수'들이 테우를 타고 마라도로 들어갔다. 테우 주인인 이씨 부부는 아이와 열세 살이 된 애기업개를 함께 데리고 섬으로 갔다. 잠수들은 지천으로 널린 해산물을 손쉽게 건져 올렸다. 식량이 다 떨어질 즈음 잠수들은 떠날 채비를 했다. 테우가 섬을 벗어나려 하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었다. 떠날 것을 포기하고 섬으로 돌아오니 바람은 잠잠해졌다. 다시 떠나려면 또 바람이 거세졌다. 그러기를 여러 날 반복됐다. 잡아놓은 해산물까지 다 먹고 없어졌다. 물과 양식이 바닥나 버린 날 저녁 잠수들은 기어코 내일은 떠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아침, 가장 연장자인 잠수가 꿈 이야기를 했다. "어젯밤 꿈에 애기업개를 두고 가지 않으면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고 했다. 테우의 주인 이씨 부인 또한 같은 꿈을 꾸었다 했다. 잠수들은 애기업개를 놓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씨 부인은 기저귀 하나를 걸어놓았다. 테우에 사람들이 오르자 다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씨 부인은 애기업개에게 기저귀를 걷어오라고 시켰다.
![]()
애기업개가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 테우는 떠나버렸다. 애기업개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테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 3년 동안 사람들은 죄책감으로 마라도에 가지 못했다. 3년 후 사람들이 다시 마라도에 들어갔을 때 애기업개는 백골이 되어 있었다. 잠수들은 뼈를 거두어 묻었다. 후일 마라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을 때 한 노인의 꿈에 자꾸 애기업개가 나타났다. 섬사람들은 애기업개가 죽은 자리에 당을 만들고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애기업개당은 처녀당, 할망당이라고도 한다. 커보지도 못하고, 늙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가 처녀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다. 섬의 수호신으로 자라난 것이다. 나그네는 애기업개 당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에야 전능한 신으로 모셔진 예루살렘의 사내를 본다. 사내나 애기업개나 그들은 사후에도 시달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은 죽은 사내와 아이를 신으로 모시고 온갖 소원과 부탁을 청하며 영혼이 한시도 안식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애기업개당’은 1995년 무렵 한차례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어떤 기독교인이 미신이라는 이유로 당을 망가뜨렸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신전을 파괴하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끝내 몰랐을 것이다.
![]()
할망당의 애기업개 설화는 울릉도 성하신당 동남동녀 설화나 흑산도 진리당의 피리 부는 소년 설화와 유사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 설화 모두 뱃길을 막는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소년이나 소녀를 제물로 바친다. 재물로 바치기 위해 어른들은 모두 동일한 간계를 부린다. 두고 온 물건을 가져오도록 심부름을 보낸 뒤 배를 몰고 떠나버리는 것이다. 마라도의 소녀와 흑산도의 소년, 울릉도의 소년, 소녀는 모두 외로움과 굶주림에 지쳐 숨을 거두고 사후에는 신당에 신으로 모셔진다. 설화들은 조선시대에도 인신공희 풍습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인신공희 과정에서 직접적인 폭력이 행사되지 않고 간계가 등장하는 것은 그러한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신공희는 암암리에 지속되었고 범죄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죄의식을 씻어버리기 위해 희생자들을 신격화시킨다. 희생자들이 신의 세계에 들어간 이상 현세에서의 범죄는 더는 죄악이 아니게 된다. 희생자들의 신격화를 통해 범죄자들은 면죄부를 받는다. 인간은 대체 어디까지 잔인하고 뻔뻔해질 수 있는 것일까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