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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관객 1600만 명을 돌파하여 역대 최다 관객 2위에 올랐다.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도, 감독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초기에 이 영화를 본 관객들도 그냥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추겠지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개봉 60여 일 만에 1600만 명을 넘어서서 역대 2위를 제쳤다. 예상과 달리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종에 대한 슬픈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이광수의 ‘단종애사’를 비롯하여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소설, 드라마 등에서 단종의 슬픈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은 우리 민족의 특성을 ‘한’으로 보는 견해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 민족의 특성이 울고 짜는 ‘한’에 있다는 것부터가 일본제국주의가 심어 놓은 식민사관의 일종이라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우리 민족을 그렇게 보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반론이 제시되었다. 오늘날 K-문화를 세계 곳곳에 당당하게 전파하는 우리의 젊은 세대는 그러한 관점을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가 이전에 있었던 단종 이야기와는 달리 민초들과 어울릴 줄 아는 ‘왕’의 모습, 의리를 중시하는 유배지 마을 사람들과 그 지도자인 엄흥도의 이야기 등이 시대적인 분위기와 어울려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는 평도 나왔다. 확실히 이 영화의 서사는 이전의 진부한 단종이나 사육신 이야기와는 결이 다르다. 그것이 흥행의 요소가 된 점은 분명히 있으리라.
그런데 이와는 딴판인 해석도 있다. 권력에서 쫓겨난 사람에 대한 애석함이 사람들을 영화 관람에 몰리게 했다는 것인데, 그 대상이 바로 윤석열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윤석열의 파면을 안타까워하며 윤어게인을 부르짖는 이들이 단종의 비극에서 윤석열을 연상하며 이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그게 흥행 2위라는 대기록을 만들게 하겠는가? 어처구니없는 분석이다.
사실 왕조시대의 왕권 찬탈에 대해서는 우리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까닭이 별로 없다. 단종은 왕권을 빼앗긴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그 증조부인 이방원으로 치면 형제도 죽이면서 왕권을 차지한 비정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아서 왕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단종이다. 단종의 왕위가 하늘에서 내린 것은 아닌 셈이다. 단종이 유배지에서나마 민초들과 친화력을 지녔던 것은 허구이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그것으로 단종과 수양대군을 구분한다는 것은 상상해 볼 수 있는 영역이기는 하지만 억지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형제도 조카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위해 싸우는 것은 그 집안 내력이기도 하지만, 왕조시대에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반사로 일어났던 일이다.
다만 그것이 오늘에 주는 의미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항일운동기에 이광수는 ‘단종애사’라는 소설을 써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그렸다. 이와 달리 김동인은 ‘대수양’이라는 소설을 통해 구국을 위해 간신배나 무능한 사람들을 제거한 영웅으로 수양대군을 그렸다. 이 둘은 당시 상황을 정반대로 해석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본질에서 유사한 면이 있다. 그것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김으로써 근본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수양대군을 높이 평가하는 김동인은 물론 이광수도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묘사한다.
이광수의 ‘단종애사’는 1928년과 1929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것이고, 김동인의 ‘대수양’은 1940년에 출판된 것이다. 이 시기는 일제가 우리 민족에 대한 억압을 극대화하던 시기이다. 현실에 대해 무력하게 느끼는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이들의 의도가 소설을 통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광수는 단종에 대해 동정적인 자세를 보이면서도 세조의 행위를 합리화하면서 그저 슬퍼하는 것밖에 달리 길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현실은 비극적이지만 강한 것이 옳은 것일 수밖에 없다는 그의 사고 체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김동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강한 것이 결국 진리라는 아주 천박하고 궤변적인 사고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강한 것에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강한 것’은 당시에는 물론 일본제국주의이다. 하지만 이들은 눈앞에 강하게 보이는 것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소멸하고 만다는 평범한 이치조차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광복의 날을 눈앞에 두고서 ‘적극적인 친일행각’을 벌이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왕사남으로 돌아가 보자. 1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짧은 시간에 개봉관을 찾은 것은, 그만큼 그 영화가 사람들의 정서나 사고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강한 것이 옳다’는 생각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새로이 해석하면 어떨까?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점령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총칼로 짓누르려 한 내란수괴와 싸워서 이긴 사람들이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비록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폭력으로 조카를 쫓아내고 죽인 자의 부당함을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인정할 수 없다는 우리 국민들의 정서와 사고가 흥행의 원동력이 아닐까?
좀 더 나아가 보자. 오늘날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들의 횡포로 온 세계가 난리법석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당하고 집과 생계 터전을 잃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미국과 그들과 한 패거리인 이스라엘이 협상 중에 공격을 해서 전쟁을 일으켰고,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 공습을 했는데도, 그들은 무엇을 해도 옳고, 그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천박하고 궤변적인 언행을 하는 자들이 이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적지 않게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보았고, 보고 있고, 볼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헛된 것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을 세계 곳곳에서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머지않은 시기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꺾이고 말 것이라는 것을! 왕사남 현상에서 우리는 그것을 보아야 하고, 의식하든 안 하든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흥행하게 한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믿어야 한다.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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