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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이 죽었다.
더 심한 말도 있지만 이 글을 읽는 이들의 눈과 귀를 더럽히는 것 같아서 참겠다. 그렇다고 어떤 언론처럼 그의 죽음을 두고 '향년' 몇 세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다. 더욱이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따위의 말은 물론 하지 않겠다.
그는 어떤 인간과도 비교되기 힘들 정도로 악귀 같은 삶을 살았고, 그에게 온갖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이 아직도 그때의 고통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안고 이 땅에서 숨쉬고 있다.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참회하지 않았다. 목사가 되는 등 갖가지 쇼는 했지만 결국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를 천수(?)를 다하게 한 것에 통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 심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분노가 지나쳐서 자괴감을 넘어 우리의 역사에 대해 자조하고 패배주의에 빠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전두환이 죽을 때 많은 이들이 느낀 감정이었으리라. 그런데 우리가 개개인에 대한 복수 차원으로 역사를 보지 않는다면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근안이 김근태 선생을 전기고문하면서 민주화가 되면 네가 나를 고문하라고 했다고 한다. 김근태 선생의 법정 진술에 나오는 내용이다. 아마 그 말을 할 때 그는 자기 신세가 그 뒤 어떻게 될지는 전혀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자기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그때까지 어떤 고문기술자도 처벌받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말은 그런 일은 오지 않는다는 비아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지금은 과거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백정들을 응징할 어떠한 방법도 없는 때가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 역사의 문제점을 인식하기 위해 분노와 통한만 되새겼다. 그런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비관적 역사관과 패배주의에 빠진 듯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많이 부족해도 그들을 청산해 가고 있다. 어떻게 정확하게 신속하게 청산하고, 그들이 되살아나지 못하게 하느냐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은 그들을 청산해야 할, 청산하고 있는 전진의 시기이다.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자. 민주주의운동을 통해 우리는 전진해 왔고, 역사의 쓰레기들을 치워버릴 절호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근안이 죽었다.
죽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아직 살아있는 인간백정들을 두려움에 떨게하자. 그 후예들이 감히 역사를 왜곡하지 못하게 하자.
살아있는 인간백정에게 처벌을, 이미 죽은 자에게는 역사적 응징을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저작권자 ⓒ 직접민주주의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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