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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나누기 유자녀, “아버지가 꿈꾼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고 싶어”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일곱번째 희망나누기…민주화운동 유자녀 10명, 본인 14명에게 증서 전달

박준영 | 기사입력 2025/12/22 [15:35]

희망나누기 유자녀, “아버지가 꿈꾼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고 싶어”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일곱번째 희망나누기…민주화운동 유자녀 10명, 본인 14명에게 증서 전달

박준영 | 입력 : 2025/12/22 [15:35]

“세상은 두 분을 뜨거웠던 민주화 운동가로 기억해 주셨지만, 사실 남겨진 저와 제 동생에게 두 분은 한편으론 너무나 버거운 부모님이셨습니다. 냉기가 서린 집. 당장 내일의 끼니와 등록금을 걱정해야 했던 그 막막함. ‘민주주의’니 ‘대의’니 하는 거창한 말들이 당장 내일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냉소적인 생각이 마음을 잠식하던 때였습니다. 

그때, 재단에서 저희 형제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단지 부모님이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저희 형제에게 장학금을 쥐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너희 부모님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명이자, ‘혼자가 아니다’고 말해주는 어른들의 ‘연대’였습니다.” 

(첫번째 희망나누기 유자녀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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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9일(금) 오후 3시 노무현시민센터에서는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일곱번째 희망나누기> 전달식이 열렸다. ⓒ 박대윤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는 올해로 일곱번째로, 2019년 어느 독지가가 민주화운동 유자녀들을 위한 장학사업으로 매해 1억원 쾌척을 약속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0여 명의 민주화운동 유자녀와 몸이 아픈 본인들에게 장학금과 생활지원금을 전달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기부자의 첫 삽이 어느새 수백명이 함께하는 ‘어른들의 연대’, ‘동지들의 연대’로 깊어지고 있는 셈이다.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일곱번째 희망나누기 전달식은 12월 19일(금) 오후 3시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진행됐다. 

 

전달식에서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 채 “우리가 민주화운동을 할 때, 우리의 희생으로 나라와 우리 겨레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우리는 신명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우리의 가족들은 고통속에 살아온 게 사실이다”며 그 시절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민주화운동을 해온 동지들이 후손들에게 우리의 관심을 넓혀 가는 현장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명예이사장은 “장학금을 받는 자녀들이 그 마음을 깊이깊이 나누길 바란다”면서 “그 길이 세상을 바꾸는 길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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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9일(금) 오후 3시 노무현시민센터에서는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일곱번째 희망나누기> 전달식이 열렸다. ⓒ 박대윤    

 

일곱번째 전달식에 앞서 희망단비 전달식이 있었다 희망단비는 유자녀들이 안정적으로 학업 및 취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1년간 매달 50만원씩 지원하는 사업으로 올해는 8명의 유자녀가 희망단비에 선정됐다.

 

희망단비로 선정된 故 홍만희 님의 자녀는 “희망단비 신청서에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면서 “솔직히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리려한 세상은 (희망단비와 같은) 이런 세상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14명의 몸이 아픈 본인에 대한 생활지원금 전달식이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질병이나 사고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주화운동 당사자들은 희망나누기를 향해 “희망나누기사업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중인 박미정씨는 “희망나누기 추천 소식을 듣고 내가 이 상을 받아도 되는가 생각했다”면서 “희망나누기는 어서 나아서 현장으로 오라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몇 고비들이 남아 있지만 병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곧 투쟁의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암 소식에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는 오정숙씨는 “특별하지는 않았으나 꾸준히 한 길 걸어온 삶이라 자부해왔는데 송두리째 그 믿음이 무너지는 허망함”이었다면서 “하지만 희망나누기 소식을 듣고 지금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쉼이라고 생각하고 뚜벅뚜벅 새 희망을 갖고 걸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는 감사의 마음을 전해 왔다. 

 

20대 피끓는 청춘이 이제는 60대 중늙은이가 됐다고 본인 소개를 한 전일곤씨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희망나누기는 나의 동지들이 나를 잊지 않고 그때 그 세월을 기억해 주는 것이고 나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시간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이라며 병마를 이겨내며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10명의 유자녀에게 희망나누기 전달식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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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9일(금) 오후 3시 노무현시민센터에서는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일곱번째 희망나누기> 전달식이 열렸다. ⓒ 박대윤    

 

“아버지는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씩씩하게 잘 살겠습니다. 우리 아버지 많이 사랑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故 전규홍 님의 자녀)

“5년전 절친했던 친구의 죽음이 준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스스로 일어날 거라며 기다려 주셨습니다. 저도 한걸음씩 나아가려 합니다. 도움 받는 입장에서 도움 주는 자랑스런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故 황면성 님의 자녀)

“희망나누기를 계기로 아버지의 삶과 마음을 알게 됐습니다.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엄마랑 동생도 잘 돌보겠습니다.”(故 김진근 님의 자녀)

“희망나누기를 계기로 아버지의 기록을 읽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아버지가 그 시절을 사셨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故 김천석 님의 자녀 )

“사고로 현재 재활치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지원 덕분에 재활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참여할 미래를 그릴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버지의 헌신이 지금의 저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책임감 있게 제 길을 이어가겠습니다.”(故 이효운 님의 자녀)

“지난 시간, 많은 분들 덕택에 외롭지 않게 지냈습니다. 아버지의 치열했던 삶을 기억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故 김희영 님의 유가족)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는 맞는 말이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의 형편은 나아질 줄을 몰랐고 친일파의 후손은 갈수록 부와 권력을 쌓아갔다. 그러나 <희망나누기>는 이 씁쓸하고 한탄스런 현실을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다. 

 

이름모를 기부자의 민주화운동 유자녀를 향한 희망나누기의 씨앗은 어느새 수백명의 ‘어른’들이 키워낸 큰 나무가 되어 유자녀들의 든든한 버팀목, 지지대가 되고 있으며 몸이 아픈 동지들의 어려운 삶을 이겨낼 따뜻한 지붕이 되었다.

 

민주화운동의 기억이 삶의 떳떳한 자랑이 되고,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나눔이 되고 있는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희망나누기>. 그 멈춤 없는 희망나누기를 응원한다. 

 

<첫번째 희망나누기 유자녀 편지> 

故 남수철, 故 박찬희의 장남

 

안녕하세요. 희망나누기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희 형제를 지지해 주셨던 모든 선생님들께. 

고 남수철, 박찬희의 장남 남○○ 입니다. 

2019년 겨울은 제 인생에서 가장 춥고 잔인한 계절이었습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병마와 싸우시던 어머니가 떠나셨고, 그보다 한 해 앞서 아버지를 먼저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세상은 두 분을 뜨거웠던 민주화 운동가로 기억해 주셨지만, 사실 남겨진 저와 제 동생에게 두 분은 한편으론 너무나 버거운 부모님이셨습니다. 

냉기가 서린 집, 희대와 한의대라는 긴 학업은 남았는데, 당장 내일의 끼니와 등록금을 걱정해야 했던 그 막막함. ‘민주주의’니 ‘대의’니 하는 거창한 말들이 당장 내일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냉소적인 생각이 마음을 잠식하던 때였습니다. 

 

그때, 재단에서 저희 형제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단지 부모님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저희 형제에게 장학금을 쥐어주셨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처음엔 그 지원금이 그저 ‘살기 위한 돈’이었습니다. 덕분에 학교를 마칠 수 있었고, 밥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한의사가 되어 제 진료실을 갖고, 환자들의 아픔을 치료하다보니 조금씩 깨닫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너희 부모님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명이자, ‘혼자가 아니다’고 말해주는 어른들의 ‘연대’였음을요. 

그 덕분에 저와 동생은 살아내는 하루를 견뎌내고, 이제는 살아갈 날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합니다. 

부모님의 부재가 남긴 상처 때문에 ‘과연 내가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하는 회의적인 생각도 많았지만, 저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감사한 것은, 제 아내의 뱃속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딸이라고 합니다. 

 

제가 만약 그때 그 손길을 잡지 못했다면, 지금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행복-좋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될 준비를 하는 시간-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겁니다. 

제 아이는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동지들이 살려낸 아빠 덕분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마주할 세상은 제가 겪었던 2019년 겨울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받은 은혜는 갚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부모님처럼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는 혁명가는 못 되더라도, 적어도 제 딸아이에게, 그리고 저를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좋은 어른’이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보여주신 그 마음처럼, 저도 누군가의 가장 추운 순간에 손을 내밀 수 있는 대정함을 잘 간직하겠습니다. 

 

부모님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도와주신 여러분의 뜻이 바래지 않게, 

잘 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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