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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멀리까지 가서 투표하고 온다고) 대단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거든요… 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미국 LA에 거주 중인 김인숙 사람사는세상 LA 대표(이하 김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치뤄진 제 21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에 맞춰 LA에서 한국을 찾았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오직 대통령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故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찾은 김인숙 사람사는세상 LA대표
재외국민투표는 등록기간에 직접 등록해야 투표할 수 있다. 거주지를 기준으로 자동으로 유권자 등록이 이뤄지는 국내와 달리 한 번의 절차가 더 있다. 게다가 투표소가 각 나라별로 1곳 내지 2곳에 불과해 투표장에 찾아오는 것도 큰일이다. 7~8시간, 길게는 12시간 이상을 직접 운전해서,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투표소로 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그녀는 “이렇게 불편하고 번거로운 재외국민투표를 통해서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진정한 애국자”라고 말한다. 그녀 역시 재외국민 투표에 빠짐없이 참가해 왔고 LA 영주권을 얻기 전에는 매번 한국을 찾아 투표에 임해왔다.
5.18 광주의 현장속으로
김인숙 대표는 미국에서 사람사는세상 LA대표를 포함해 20년 넘게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AOK LA 대외협력위원, LA촛불행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꾸준한 활동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녀는 1980년 광주에서의 경험을 꼽았다. 전라북도 김제가 고향인 그녀는 전라남북도 일대에서 경지정리 사업을 하던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고 있었다. 24살 무렵이다.
갑자기 광주로 통하는 모든 연락이 막히자 ‘무언가 급히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곧장 광주로 향했다. 장성 인근에 이르자 도로까지 모두 막혀있었고 ‘무슨 큰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한 두 사람은 농로, 논길같은 샛길을 타고 광주에 입성한다. 경지정리 사업차 농촌마을 곳곳을 다닌 덕에 길눈이 밝아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몰랐기에 가능한, 자칫 생사가 오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결정이었다.
“광주에 도착하니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남편이 ‘절대 외부활동을 해서는 안되겠으니 사무실로 가자’고 권했어요. 대인동 사무실에 체류하며 동네 어머니들이 밥을 짓고, 주먹밥을 만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훤해요. 그때 어머니들이 ‘(전두환에 대해) 자식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 TV에서, 신문에서 하는 말만 옳다고 믿으며 지냈는데 20대 학생들이,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욱 잘 아는 게 맞았다.’라고 하소연 하시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광주에서의 경험은 자연히 그녀를 민주주의의 물결을 따라 흘러가도록 이끌었다.
LA에서 진행한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
LA교민들과 함께한 박근혜 퇴진 집회
2024년 5월, AOK 창립 11주년을 맞이해 회원들과 함께
즐겁게, 그냥 하는 것이 만드는 기적들
김 대표가 미국 LA에 정착한 것은 2000년 무렵이다. 지적장애를 안고 태어난 첫째 아들을 키울 수 있는 더 나은 여건을 고민한 끝에 LA에 정착했다.
그녀는 아들에게 태권도, 수영, 피아노, 스케이트 등을 가르치며 ‘스트레스 주는 일이 아니라 평생 취미를 익히기 위해 그저 놀다 오는 것’임을 아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며 교육에 임했다고 한다.
이를 포함한 그녀의 정성어린 노력들 덕에 아들은 현재 일상 생활을 무리없이 소화하고 있으며 나아가 평생 취미로 익힌 활동들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아들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일상으로 보내고 있어요. 저의 공항일정에 맞춰 아들이 직접 차를 운전해 데리러 오간다니까요. 정말 기적이에요.”
이 같은 경험 때문일까? ‘집회도 놀면서, 재밌게 해야된다’는 지론이 확고하다. 윤석열 퇴진 집회를 통해 알게 된 3,40대 젊은 친구들이 집회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조언한다.
“오는 사람은 와서 좋고, 가는 사람은 그냥 가라고 놔두고, 그냥 있는 사람들끼리 더 재밌게 지내면 되는 거야. 왜 그러냐면 사람 생각이 다 다르니까. 그게 당연한 건데 (생각이 다르단 이유로, 생각이 다른 사람의 발언 때문에, 집회에 많이들 참여하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어요. 그냥 재미있게 하는거지 누구 나왔네 안 나왔네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LA에 정착한 후에도 박근혜 퇴진집회, 윤석열 퇴진집회 등 끊임없이 행동하며 집회에 잔뼈가 굵은 그녀다. ‘기적’이라고 말하는 아들의 이야기와 함께 듣고 나니, 그녀가 말한 활동 지론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다.
침략당한 식민지에서 일어난, 일어날 기적들
해외에서 지내기 때문에 더욱 잘 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 있다. 그녀는 ‘한국 사람들이 정말 끈기 있고 대단한 민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El pais)와 했던 인터뷰를 소개했다.
“서양 사람들은 이해 못 합니다. 한국은 침략당하고, 파괴되었고, 둘로 갈라진 나라입니다.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나라입니다. 우린 IMF와 UN의 원조를 받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죠.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그건 바로 우리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혹독하게 일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나 영국처럼 수 세기 동안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했던 나라의 사람이 저를 보고 "세상에,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너무 압박해요, 한국에서의 삶은 너무 스트레스가 많네요!"라고 하죠. 그래요. 우린 그렇게 목표를 달성해왔거든요. 그리고 이 방식이 K-POP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드는 점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부작용도 있겠죠. 모든 일이 그렇듯이요.” RM. 2023. 3. 12.
이 인터뷰는 타 민족을 식민지배했던 서구국가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을 내포하고 있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를 거론하며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소중한 생각 하나 하나가 모여서 오늘날 같은 대한민국의 힘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생각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곤 한다”고 말한다.
식민지배를 당했던 굴곡진 근대사를 그녀의 삶 속에서 들을 수 있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그녀의 증조할아버지는 고향 김제 지역에서 동학농민운동에 적극가담했다고 한다. 김제 쇠장터에 사람들을 불러모아 인근 고부에서의 일을 알리는 활동을 했고 이로 인해 증조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목숨을 잃었다고. 이에 부모를 잃은 삼형제는 인근 남영 홍씨 집안에 머슴을 살게 된다. 그렇게 첫째 아들이 홍씨 집안의 큰 딸과 혼인을 하게 되는데 이들이 그녀의 할아버지 할머니라 하니, 반외세 기치를 내걸고 저항했던 굵직한 민족사가 그녀의 가족사에 깊이 새겨져 있다.
RM의 인터뷰 속 언급처럼 지금도 분단으로 이어지고 있는 식민의 역사, 분단과 통일에 대한 김 대표 생각은 어떨까? 답변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간결했다. “분단을 야기하는 제반 조건을 바꿔가는 작업을 하다 보면, 실질적으로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만들어 질 거에요. 애초에 우리가 원해서 분단이 된 게 아니잖아요? 때문에 우리는 결국은 하나로 만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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